삶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꿈은 명사일 수 있지만, 삶을 만드는 것은 그 명사를 살아내는 동사입니다.
꿈을 물으면 왜 자꾸 이름을 말할까
누군가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보통 어떤 이름을 답합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 의사가 되고 싶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해하기 쉽고, 남에게 설명하기도 좋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여 주기에도 편합니다. 저도 오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떤 자리에 닿으면 삶이 조금은 정리될 줄 알았습니다. 지금의 불안이 줄어들고, 애매한 마음도 사라질 줄 알았습니다. 원하던 곳에 도착하면 그때부터는 조금 더 괜찮아질 줄 알았습니다. 그 생각이 꼭 틀렸던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생각이 제 삶을 조금씩 바꿔 놓는 방식에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그 일이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지금 하는 일이 재미있는지보다 그 일이 나중에 어떤 이름으로 남을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삶은 살아가는 일이 아니라 어딘가에 도착하는 일이 되어 갔습니다. 사람은 삶을 자꾸 정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채로 살아가는 일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 시간을 짧은 단어로 바꿔 둡니다. 성공, 안정, 직업, 행복 같은 말로 삶을 묶어 두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삶은 그렇게 쉽게 묶이지 않습니다.
이름은 필요하지만,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오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름으로 된 꿈이 전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직업을 꿈꿀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바람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문제는 그 이름에 도착하면 삶이 다 해결될 것처럼 믿는 데 있습니다. 의사라는 말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 안에서 배우고, 견디고, 책임지고, 실패하고, 다시 해보는 일로 채워집니다. 좋은 아버지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건 한 번 얻으면 끝나는 자리가 아닙니다. 오래 듣고, 기다리고, 화를 참고, 미안하다고 말하고, 다시 관계를 붙드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이름은 삶을 잠깐 설명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삶을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합니다. 꿈은 명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을 만드는 것은 그 명사를 살아내는 동사입니다.
어떤 성취는 왜 생각보다 빨리 비어 버릴까
어떤 꿈은 이루고 나면 생각보다 빨리 힘을 잃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꿈이 도착하는 순간 끝나기 때문입니다. 이루기 전에는 많은 것이 달라질 줄 압니다. 거기까지 가면 불안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해지고, 삶이 조금은 분명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닿고 나면 생각보다 담담합니다. 그냥 그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기대했던 것처럼 삶 전체가 새로워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뒤에도 계속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목표는 끝났는데 삶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묘한 공허가 생깁니다. 분명 원하던 곳에 왔는데, 마음 한쪽에서는 이런 질문이 올라옵니다. 이제 뭐 하지. 이게 다는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분명 도착했는데 왜 아직도 삶은 계속되지. 이 질문은 가볍지 않습니다. 삶이 이름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이 오면 삶이 딱 정리될 줄 알지만, 실제 삶은 그런 기대를 자주 비껴 갑니다. 도착은 했는데 마음이 오래 차오르지 않습니다. 성취는 있었는데 그 성취가 삶 전체를 붙들어 주지는 못합니다. 이름은 도착하는 순간 완성되지만, 그 이름을 살아내는 동사는 그 뒤에도 계속 이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름만 붙잡고 있으면 도착 다음 날부터 할 일이 사라집니다.
그럼 다음 꿈을 세우면 되는 것 아닐까
여기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 꿈을 이루면 다음 꿈을 세우면 되는 것 아니냐. 삶은 원래 그렇게 이어지는 것 아니냐. 맞는 말입니다. 사람은 하나를 이루고 나면 또 다른 것을 바라봅니다. 삶은 한 번의 성취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계속 바꾸는 삶은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도 여전히 삶을 다음으로만 미루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이루면 다음 것. 다음 것을 이루면 또 그다음 것. 그러면 지금은 늘 준비 시간이 됩니다.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계속 다른 이름을 갈아 끼우는 것은 다릅니다. 새 꿈을 세우는 일은 성장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빈 마음을 잠시 덮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둘은 겉으로는 비슷하지만 실제로는 다릅니다. 성장은 지금의 삶을 더 깊게 만들고, 빈 마음을 덮는 목표는 삶을 자꾸 나중으로 미룹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다음 이름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그 이름 아래에서 제가 실제로 어떤 동사를 반복하고 있는지를 보는 일입니다. 내가 더 충실하게 살고 있는지, 아니면 그럴듯한 다음 목표만 하나 더 붙잡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태도라는 말도 조금은 멀게 느껴진다
이쯤 되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삶은 명사가 아니라 태도가 중요하다고.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태도라는 말도 가끔 멀게 느껴집니다. 좋은 태도로 살아야 한다는 말은 맞지만, 그 말만으로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태도보다 동사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태도는 마음가짐처럼 들리고, 동사는 실제로 하는 일처럼 들립니다. 삶이 동사라는 말은 대단한 뜻이 아닙니다. 삶이 계속 이어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완성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잘 모르겠는 채로도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되었는지보다 무엇을 계속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삶은 단단한 이름보다 오래 걸리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배우는 일. 버티는 일. 쓰는 일. 고쳐 쓰는 일. 실망하는 일. 다시 시작하는 일. 잘 모르겠는 날에도 오늘 할 일을 하는 일. 삶은 이런 일들 속에서 조금 더 또렷해집니다.
사람을 만드는 것은 그가 반복하는 일이다
돌이켜 보면 사람은 자기가 말하는 꿈보다 자기가 반복해서 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지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일 무엇을 하고 있는가입니다. 삶은 이미 정해진 자리를 향해 곧장 가는 길이 아닙니다. 반복하고, 고치고, 실망하고, 다시 해보고, 때로는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결국 사람을 만드는 것은 하나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오래 반복한 일들입니다. 무엇을 좋아한다고 말했는가보다 무엇을 계속했는가. 무엇을 꿈꿨는가보다 어떤 날에도 다시 했는가. 무엇이 되고 싶었는가보다 무엇 앞에서 자주 멈췄고 무엇 앞에서는 다시 돌아왔는가. 삶은 그런 것들로 남습니다.
마무리
이제는 삶을 하나의 이름으로 정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오래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이름은 필요합니다. 방향을 잡을 때 도움이 됩니다. 꿈도 여전히 이름의 형태로 옵니다. 부자, 의사, 좋은 아버지 같은 말들로 옵니다. 그 이름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 이름만으로 삶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삶은 도착한 이름보다 그 이름에 이르기까지 반복한 일들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얻은 뒤에도 계속해야 하는 일들에 더 가깝습니다. 꿈은 명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삶을 만드는 것은 그 명사를 살아내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이 되겠다는 말보다 오늘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보려 합니다. 그 이름에 도착한 뒤에도 무엇을 계속할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려 합니다. 삶은 어떤 이름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가는 일 속에서만 조금씩 분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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